오바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국제동향] 오바마의 경제정책은 ‘가면을 쓴 부시’, 변화와 개혁 실종
 
姜成宗

 

譯者의 註釋: 지금 미국을 강타하는 글이 뉴욕타임스에 나와서 화제가 되고 있다. 트위터나 구글은 온통 이 글로 홍수가 날 지경이다. 오바마는 선거 때 변화(Change)를 들고 나왔고 금융가에서 안방으로(From Wall Street to Main street)라는 구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선 후 그는 경제를 망친 부시경제팀을 단 한 명의 교체도 없이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 비위를 맞추느라 전전 긍긍하고 있다. 경제는 오바마가 정권을 잡은 이래 더 악화되었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하는듯한 얘기로 꽉 차있지만 행동은 부자에게 감세를 연장하는 것과
제금융을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금융가로 보내서 가면을 쓴 부시라고까지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연 오바마가 누군가? 무엇 하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지 오바마의 다른 면을 얘기하는 글이 번지고 있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참고하기 바란다.
http://www.lewrockwell.com/orig11/madsen1.1.1.html
Westen 교수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이 글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순식간에 370개의 지지하는 댓글로 뉴욕타임스는 더 이상 댓 글을 받지 않았다. Westen 교수는 뇌과학/임상심리학가로서 정치평론가로서 약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교신으로 자문을 하면서 활약하고 있다. 이 글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글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직하게 번 돈과 내게 와야 할 정직한 임금이 금융가로 빨려 들어갈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사회는 변화를 요구하고 이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이 글은 내년에 있을 한국 대선에 유권자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도 지적해주는 듯싶기도 하다. 미국 전역을 흔들어 놓은 이 글의 번역은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얼마나 많은 우리 한국인이 읽을까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번역에서 科學者는 科學家로 했고 資本家는 資本者라고 하는 등 언어의 뉴앙스를 이해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꿔지기를 희망한다. 역자: 姜成宗 @quovadiskorea   

What Happened to Obama?
뉴욕타임스 2011년 8월 7일 / 안드류 웨스텐 (강성종 번역)
안드류 웨스텐 (Drew Westen) 은 에모리 대학 심리학교수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정치적 두뇌: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감성의 역할>의 저자이기도 하다.
출처:http://www.nytimes.com/2011/08/07/opinion/sunday/what-happened-to-obamas-passion.html?pagewanted=all




Atlanta 에서

대통령취임식에는 자주 그랬듯이 지난2009년 정월 20일도 바람이 사납게 불어 치는 날씨였다. 여덟 살 먹은 딸과 함께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덴가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렇게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 이러한 행운의 시기에 무엇인가 잘못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설혹 그것이 앞으로 닥쳐올 사건의 곤혹스러운 예언적 징조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 연설은 미국국민이 눈 빠지게 듣기를 기다렸던 얘기이고 또 들을 필요성이 있는 얘기였지만 오바마는 바로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오바마의 정적이 격분해서 그에게 돌과 화살을 던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다.

▲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Government action against poverty in the '30s included the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 위키피디아

지도자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얘기들은 우리의 부모가 우리가 어렸을 때 해주던 얘기처럼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얘기들은 문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되여야 하는지에 관해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얘기들은 미국국민들이 갖는 세계관이나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관한 것이다. 지지자든 사악한 사람이든 우리의 두뇌는 올라가야 하는 산이라든가 싸워야 하는 전쟁터와 같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구조를 가진얘기를 기대하도록 진화했다. 인간의 종자는 최초의 讀解能力 징조를 나타나기 전 10만년 동안 존재해왔고 대부분의 인간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기 전 5천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얘기라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지식과 가치를 전달하는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아이들은 잠자리의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 3개의 一神論的 宗敎經典도 寓言으로 쓰여저있다. 인식과학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배심원 審判에서변호사의 최후진술은 법적 반대파에 대응하는 사건의 사실을 정리하고 이겨야 하는 얘기들이다.

바락 오바마가 취임식 날 講臺에 올라갔을 때 나라는 갈기갈기 찢어있었고 미국국민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경제가 꺼꾸로 돌아가고 있은 것이었다. 바로 그 달에 75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둥지인 집과 함께 마지막 남은 저금까지 다 잃어버려야 했다. 경제적으로 확고하고 아무도 못 뚫는다는 상위중산계급까지도 십여 년간 투자한 것이 계속 정체되고 하강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어야 했고 끝이 안 보이는 주식시장이 가라앉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희망도 신용대출처럼 말라버렸다.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국민은 그들이 겪은 고통이 무엇이며 원인이 무엇이었고 이를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얘기를 대통령이 직접 해주어야 한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국민은 그들이 느끼는 것을 대통령이 이해한다는 것을 들어야 했고 대통령이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누가 책임을 저야 하는가를 추적하고 질서와 안전을 회복하겠다는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미국국민들이 기다리는 것은 큰 획을 그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런 얘기들이다:

대통령으로서 저는 여러분이 겁에 질려있으며 분노에 꽉 차여있음을 잘 압니다. 미국국민은 직장을 잃었고 집을 잃었으며 희망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재앙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생명과 미래를 담보로 노름을 한 金融街의 도박꾼들이 만든 재앙입니다.

만일 규제를 없애고 탐욕과 魯莽(로망)에 응분의 상을 준다면 모든 것은 다 잘 될 것이라고 말한 극우보수세력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입니다. 일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결과는 반대로 되였으며 80년 전에도 꼭 같은 극우보수세력이 우리의 조부모님들에게 같은 종이조각을 팔았고 꼭 같은 결과로 일은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를 배웠고 우리는 우리조상의 지혜를 잘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방식으로 경제신뢰를 회복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하는 미국국민들이 번 돈은 미국국민들의 호주머니 속에 다시 집어넣고 금융시장의 성실성과 정직함을 회복시키고 금융시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성실함과 정직성을 요구 함으로서 경제신뢰를 회복하겠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은 못하지만 만일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정직한 실수임을 맹서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지지를 다시 받는 정부가 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얘기 하는 것은 물론 정책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말 그리고 그러한 말에서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정책은 연속적으로 실패 속에 끼여있는 이년 반 동안의 실패한 정부, 멈추고 있는 공장들, 그리고 쉬고 있는 일손에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 하는 공포에 면역주사와도 같을지 모른다. 그러한 얘기는 공화당과 금융가가 이 나라에 저질러놓은 쓰래기를 치우라고 미국국민이 민주당 대통령과 상하 양 위원들을 뽑았다는 것을 대통령이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할 것이다. 또한 이는 권력분배가 아니라는 것도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는 또한 문제는 세금과 소비자유주의나 혹은 재정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정적자는 부시가 미국의 가장 부유한 계층에 2조 달러(2 trillion)를 돌려주고 두 개의 전쟁 (이락과 아프카니스탄)에서 1조 달러(1 trillion)을 낭비하기 전까지 없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익단체들의 지배적인 해석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문제는 소방관들의 연금과 같은 소비에 대한 대안이 아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야 할 세금은 적게 내면서 미국의 파이의 큰 쪽을 독식하도록 법을 고치는 사실에 대한 대안이다.

그러나 그들의 얘기는 없었다. 있어본 일도 없다.

반면 지금과 같은 비슷한 환경에서 푸랑크린 D. 루스벨트는 미국국민에게 대통령이라는 권한을 이용해서 국민들의 생활이 더 좋아지고 문제가 올바르게 될 때까지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는 그의 첫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그리고 그 뒤 爐邊閑談 (fireside chats)에서 경제붕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잘 설명했다. 그리고 미국의 재원을 사용하여 미국국민을 직접 일자리로 보내기 위한 그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大力(Halls of Power)에서 위기를 조성한 사람들을 미국국민들로부터 격리시킬 것을 약속했고 그를 지켰다.

1936년 매디손 스케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우뢰같은 소리로 역사에서 단 한번도 이들의 힘이 그렇게 똘똘 뭉쳐서 오늘과 같이 단 한 명의 대선출마자를 반대해서 단결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滿場一致로 저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증오를 환영합니다. 라는 연설을 했다.

바락 오바마가 楕圓形辦公室(Oval Office)에 들어갔을 때 그는 푸랑크린 루스벨트와 그의 친척이 되는 데오돌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서 표본이 된 것처럼 미국역사의 한 章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미국이 농민의 나라에서 도시산업국가로 바뀐 후 大技術革命이나 大經濟的 過渡期가 지난 다음에는 부가 크게 축적되는 시기가 있었고 그러한 富의 축적과 함께 권력이 富에 몰리는 것을 보아왔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1928년 大恐慌 때 보았고 바로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점에서 그러한 권력은 아주 신중하지 못하게 행사 되여서 그 많은 생명들이 견디지 못한 결과 혁명의 繼起가 되였고매력적인 개혁가가 나와서 다시 복원하곤 했다. 데오돌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은 그의 친척 푸랑크린 (Franklin D. Roosevelt) 이 30년 후에 다시 채택한 개혁의 문을 열었다. 푸랑크린은 신뢰를 회복하고 철도를 규제하며 은행과 국가의 식량공급체제에 대해서 연방정부의 권한을 발휘했다. 겸해서 미국의 토지와 야생동물을 보호하여 오늘날 환경운동을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역사적인 역할이 담겨있는 큰 그릇이었고 미국국민들은 오바마가 그 큰 그릇에 더 채워 넣기를 바라고 그를 당선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도덕적인 세계의 활은 길지만 결국에는 正義 쪽으로 휜다> 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역사의 활>을 종종 引用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그의 저변에 깊숙이 깔려있는 충돌에 대한 嫌惡(혐오)와 화해는 항상 잘못된 행동방향인 惡霸다. 왜냐하면 폭도들은 이러한 오바마의 행동을 약점으로 보고 한방 때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휘어지는 활을 꺾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반대로 휘어질 때까지는 적어도 한 세대가 필요하다.

마틴 루터 킹이 <큰 활은 正義 쪽으로 휜다> 라고 말했을 때 그는 우리가 활이 저절로 휘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킹 목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 뒤에 힘을 실어줄 것을 권고했다. 그는 평생 물 대포의 起泡力과 警察犬의 우르릉거리는 이빨에 의해서 중단되곤 하는 연설 속에서 살아왔다. 그는 비폭력을 설교했지만 폭력배들이 棍棒이나 人頭稅 뒤에 무엇을 숨겨놓았는지는 아는 유일한 효과적인 반응은 대결을 하고 폭력배들이 혐오에 찬 진짜 얼굴을 일반인에게 보여주게 큼 하는 것이다.

반면, 최대의 경제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결과로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심했을 때, 대공황이래로 대기업이 정치에 행사하는 영향이 고조에 달했을 때, 바락 오바마는 역사의 눈을 처다 보았지만 못 본척하고 눈을 돌렸다. 경제를 망친 사람들을 고발하기는 커녕 오바마는 그들에게 경제를 맡겼다. 그리고 그는 국민에게 그러한 결정을 말하지 않았다. 얘기를 말하지 않은 잘못은 그 얘기 뒤에 있는 판단의 잘못 만큼이나 심각하고 특별했다.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의 활을 꾸부리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는 아마도 반세기 이상 미국국민을 보호했던 新政策 (New Deal) 규제를 전부 없애서 나라가 엉망이 되였다는 얘기를 국민들에게 했었어야 한다. 오바마는 綏靖主義(appeasement policy)가 아닌 방법으로 문제를 어떻게 고치겠다고 하는 제안을 미국국민들에게 했었어야 했을 것이다. 경제적 수요를 창출하고 소비자를 다시 일하게 함으로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강조했었어야 했다. 그는 경제를망친 사람들을 철저히 감시했었어야 했으며, 받아 드려지지 않았다면 악폐들의 증오 앞에 굽히지 말고 확고하게 서서 그들의 미움을 견딜 줄 알아야 했었다. 그러나 오바마의 기질의 활은 그렇게 휘어지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 Litter, after an Obama-Biden train stop in Baltimore days before the 2009 inauguration.     © Todd Heisler/The New York Times

역사의 활을 분지른 것의 결정적인 움직임은 오바마가 경제촉진정책을 처리하는 과정이었다. 국민은 신뢰를 갖고 얘기하는 지도자를 갈망했고 그들은 대통령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는 팔백만의 실업자를 낸 經濟政策 (Ronald Reagan) 과 經濟原理 (Friedrich A. Hayek & Milton Freedman)는 고발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가장 나쁜 특징이 되고 있는 소위 화해를 한다는 안면경련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몸짓으로 모든 노벨수상 經濟學家들의 충고는 완전 무시하고 경제촉진을 제안한 충고에 등을 돌리고 아무런 효율이 없음을 증명한 부자에게 세금감면만 해주고 말았다. 결과는 예측한대로 돈을 반만 들여서 경제를 반만 촉진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집을 짓는데 돈을 반만 들여서 꼭 반절만 집을 지은 격과 비교된다. 그러나 반대로 백악관은 第二의 大恐. 반만이라도 행동하지 않았더라면가공할 일이 일어났을 수 있었다는 것에 반대되는 사실을 끄집어내는 것은 하나도 부럽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직도 경제의 깊은 深淵을 들여다보고 있는 평균 미국인에게는 半 促進이라는 말은 <정부가 문제>라고 한 로날드 레간 (Ronald Reagan) 대통령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사실 평균 미국인들은 민주당이 赤字開支(赤字財政支出 deficit spending)로 무엇을 성취하려고 했는지 전혀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반복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두뇌는 개념, 특히 모순된 개념으로 지팡이를 만드는데 요구되는 喚起意象(evocative imagery)으로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보험개혁 또한 그렇다. 의료보험개혁이 믿을 수 없다는 것 외에나 비용곡선을 꾸부린다는 주장 외에는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아무도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 뿐인가? 왜 신용카드개혁도 이미 너무 높은 이자에서 이자가 더 올라간다는 것 외에는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은행이 차압을 한 주택은 구제해주지 않고 우선적으로 은행은 살려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미국국민은 아직도 직장을 못 구하고 있고 매달 내는 집의 은행이자를 어떻게 지불해야 할지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는지 걱정을 했고 계속 걱정을 하고 있다. 이제 공화당도 실직보험을 깎아 내리려고 하고 있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협상한다고 다 내주고 나서 그의 상습적으로 무능력한 입으로만 지껄이는 訓辭만 늘어놓았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財政赤字辯論>이 그렇게도 超琅實的으로 보이게 한 것은 와싱톤에서 하는 對話가 미국의 부엌식탁에서 하는 對話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설혹 나는 科學家지만 지난 수년간 비영리단체와 민주당지도자들에 서신자문을 하면서 유권자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아주 쉬운 말로 얘기하는 것을 연구해왔다. 이 시점에서 오만 명 이상의 미국사람들과 세금과 재정적자에서부터 낙태 이민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제를 놓고 대화를 했다.

평균 미국유권자들은 재정적자보다는 직장에 관해서 더 많이 우려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부시와 공화당이 積欠期間 (클린톤대통령이 흑자로 남겨놓은 2조 불은 부자들끼리 서로 나눠 가져서 다 써버리고 돈을 꾸어서 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기간) 中에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었다. 傳統智慧는 미국인들은 정부를 증오하고 만일 추상적으로 질문한다면 정부는 나쁜 짓을 한다는 責罵(책마)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재정적자를 줄이느냐 국민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주느냐 의 둘 중에서 선택하라면 결과는 비슷하게 나오지 않는다. 일자리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미국사람들은 세금이나 예산이나 의회나 대통령이 삭감하겠다고 합의를 보았거나 보지 못했거나 (정유회사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은) 어느 것도, 어느 정당이고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에 동조하지 않는다. 부유층 세금면제가 문제가 되면 미국국민은 정치분파를 떠나 거국적으로 합심해서 <이러한 시기에 억만장자들은 자선단체에게 돈을 내놓아야 한다>는 여론은 지지한다.

강력한 提唱者들의 입에서 직설적으로 나오는 확고한 예산삭감 요지에 대해서 반박할 때 浮<재정적자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국민을 일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 이라고 시작하는 말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시점에서 나는 대부분의 미국시민들처럼 오바마가 (그가 이끄는 민주당까지 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무엇을 믿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은 <재정적자감소보다는 균형 잡힌 접근>을 선호한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는 稅收增加 (부자나 합법적 탈세를 하는 대형기업에 매기는 통속적인 세금을 약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와 受權 (은퇴 후 받는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삭감과 접목시키는 접근방법이다. 受權削減이라는 말도 이는 국민이 평생 일해서 낸 돈을 마치 그냥 나눠주는 것 같은 의미로 단어의 선택 또한 궁색하기 짜기 없다. 그러나 그가 서명한 법은 그냥 삭감으로 되여 있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말에 대한 언어의 부조리를 모르고 발표하는 모양은 대통령의 講故事(storytelling) 의 또 다른 特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能量 (energy) 과 기후변화에 관해서 우리는 浿洋鉆(浿洋 offshore oil drilling) 과 석탄생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연료를 얻는 이 두 방법은 미국사람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최악의 기후변화를 더 악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천오백만 명이 넘는 미국사람들이 건강보험을 갖기 위해서 醫療補助制度(Medicaid) 를 사용하는 건강보험법을 지지한다고 발표하는 한편 주 예산으로 가는 연방정부의 예산을 삭감하는 예산계획을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앞뒤가 안 맞는 결과는 뻔하다. 이러한 그의 계획은 醫療補助制度와 어린아이, 노인 그리고 신체장애자를 위한 필수의 정부계획(program)과 매일 나빠지는 경제를 말살하고 있다. 이민법 개혁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수 백만 되는 이민자들을 다 내쫓고 이민법개혁이라는 멋진 연설을 했다. 이는 조지 부시가 지난 8년 동안 한 것 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가족을 깨버리고 분산시켰다.

진솔한 난제는 왜 오바마가 매 문제마다 양쪽 정당의 비위를 그렇게 열심히 맞추어 유권자들이 그가 무엇을 원하든지 따를 것을 부추기고 그가 어느 손에 토끼를 쥐고 있는지 모르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라의 상당부분은 그를 사회주의자로 보고 있지만 그의 민주당내에서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가 민주당의 많은 내용(很)의 價値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문들이 팔고 다니는 많은 내용(很)는 아니다. 즉, 당신이 좌익이나 우익을 함께 미치게 만든다면 당신은 확실히 올바른 일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라는 식의 뜻은 아니다.

25년 이상 경험의 개업심리학가로서 나는 멀리서 진단하는 시도를 반대하지만 과학가로서 그리고 전략적 고문으로서 나는 몇 가지 가설을 감히 내놓을 수 있다.

가장 관대하게 설명해서 오바마와 그의 자문들이 많은 민주당원들은 選擧勝利의 관점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도 온건 유권자들은 중도온건파 정치인들을 좋아한다고 하는 생각에 매달려있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게 간단 하지 않다. 중도파 유권자들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직한 정치인을 좋아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오바마는 경험부족과 역사가 달랐더라면 그렇게 나약한 성격결함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유세에서 그의 연설에 미혹된 우리들 중에는 그의 이력서의 불안한 일면을 무시한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 출마이전에 사업이라든가 주정부, 의회라든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그는 12년간 시카고대학 법학교수로서 아무런 주목할만한 경력도 없고 자기를 선전하는 자서전 외에는 논문 한편 쓰지 않았다. 미 상원의회에 가기 전에 그는 일리노이 의회에서 예도 아니고 노 도 아닌 기권 (vote present)만 130번했다. 어려운 문제만 나오면 피해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좀 덜 봐주는 설명을 한다면 우리는 극우 공화당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재선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재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믿고 어떤 입장이라도 택하는 그런 대통령에 의해서 나라가 인질로 잡혀있다. 오바마는 <나이 아버지로부터의 꿈> 이라는 자서전에서 얘기하는 굉장한 얘기에 현혹된 미국사람들은 그 책에 있지 않는 마지막 章을 책 끝에 붙였다. 그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을 풀어주는 그리고 그가 누구인가? 무엇을 믿는가를 알게 하는 마지막 章을 덧붙여야 한다.

아마도 와싱톤에 오는 많은 미국정치인들처럼 그는 의식하던 무의식적으로든 아주 정직한 사람의 영혼을 시험하는 체제에 의해서 부패되었을 것이다. 돈을 얻기 위해서 전화를 해야 하고 오늘날 대통령자리에서는 수천만 불식 얻기 위해서 전화를 한다. 오바마는 자기가 원할 때 에는 탁월하고 감동적인 연설자다. 그러나 그의 얘기는 한 요소가 텅 비어있다: 문제를 일으킨 패악들은 항상 떼어놓고 비인격적 용어를 사용하던가 간접적으로 지나가는 말로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하소연할 기관도 없으니 죄를 책임질 사람도 없다는 식이다. 이러한 오바마의 태도가 성격상 그가 충돌을 피하기 때문인지 선거자금으로 오늘날 양 정당의 행정능력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람들과의 충돌을 싫어하는 것인지 혹은 두 개 다 인지 명확하지 않다.

마지막 설명은 오바마는 상충된 政治平台 (political platform)에서 대통령에 출마했다: 체제를 청소하겠다는 개혁자로서 또 하나는 紅靑線을 초월하는 단일후보로서 출마했다. (2000년에 처음 사용한 말로 紅色은 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주를 말하고 靑色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 또는 주를 말한다). 오바마는 그의 성격의 제한조건에서 그가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쪽을 따랐다. 일관되게 부딪치는 것 보다는 양당 짬뽕을 선택했다.

그러나 역사의 활은 타협 쪽으로 항복해서는 正義 쪽으로 휘어지지 않는다. 4백 명의 사람이 1억5천만의 같은 미국인 동료보다 더 많은 재산을 쥐고 있을 때에는 역사의 활은 正義 쪽으로 휘어지지 않는다. 평균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 그들의 수입이 지난 30년간 연속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동안 1%에 해당하는 미국인의 수입은 천문학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이상 역사의 활은 正義 쪽으로 휘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부모나 조부모의 고정수입을 짤라 먹고 對沖基金(hedge fund) 관리자는 15%라는 세율만 내게 하는 이상 역사의 활은 휘어지지 않는다. 노동자와 資本者 사이에 있는 협상에서 한쪽 대표만 허용하는 이상 역사의 활은 휘어지지 않는다. 政治學家들이 보여주었듯이 상원의 투표를 예측하는 것이 대중여론이 아니고 부자의 여론인 이상 역사의 활인 휘어지지 않는다. 역사의 활은 꺾어질 때 까지는 좀 휘어질 수는 있다.

[교정: 2011년 8월 8일]
이 논문의 초기원고에는 오바마 대통령 기간 중 이민자 추방자수는 잘못 인용되었다. 약 80만 명이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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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성종 박사는 1969~70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세계적인 뇌과학자입니다.
현재 뉴욕에서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과 치매를 치료하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진보·좌파 성향의 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주요 약력
한국인 최초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 게재(제1저자-1969,1970년)
전 미국 뉴욕시립대학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교수(1968-94)
전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교수(1975~78)
전 서울대 AID교수(78-79)
전 중국 천진대학 자문교수(86-94)
전 한효과학기술원 원장(89~95년)
현 뉴욕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장(치매/우울증)

* 저서
<한국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말한다>(라이프사이언스 펴냄)
<당신의 두뇌 안녕하십니까?>(라이프사이언스 펴냄)

* 강성종 박사 블로그 : http://quovadis.tistory.com/
* 강성종 박사 트위터 : http://twitter.com/quovadiskorea
Posted by 쿼바디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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