力動에서 挫折로 간 일본경제의 명암
[국제동향] 일본경제의 끝없는 추락과 중국경제의 부상을 비교해 봐야
 
강성종
譯者 注釋: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것이 흔한 예입니다. 물론 경제만은 닮지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의 경제적 동향은 우리게 많은 교훈이 되고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경종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 글에서 풍기는 계속되는 성장만이 자본주의를 지탱할 수 있다는 서구의 개념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끝없는 성장이란 불가능한 것이여서 이에 대한 처방 없이는 서구 자본주의는 몰락하게 되였습니다. 소비를 강조하고 그 길만이 통화긴축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미국식 생각은 잘못되였습니다. 소비는 잉여생산을 부추기고, 공해와 지구 온난화를 촉진합니다. 소비와 생산은 서부활극과 같은 시장에만 의존시킬 수는 없습니다.

과연 한국은 어떻게 할것인가?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불경기를 해소하겠다는 케인스의 경제이론은 푸랑크린 D. 루스벨트대통령시절에는 맞았지만 한국이 따라야할 처방은 못됩니다. 일본이 바로 그짓하다가 망하게된것! 이 기사에서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성장에서 규제를 빼버린 경제구조로 서방세계는 갈길을 못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규제를 제일로 하는 중국의 경제구조에서 배워야합니다. 미국과 서구의 압력에 의해서 조금은 완화하지만 중국은 중국 자체의 경제전략을 수행해야 하기때문에 서구에 질질 끌려다닐 수 없고 그랬으면 벌서 문제가 심각했을거입니다. 지금 중국도 성장위주로 정책을 새우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MARTIN FACKLER, 강성종 번역
Published: October 16, 2010
뉴욕타임스 2010년 10월 17일 

이 글은 지난 20년간 經濟停滯와 가격하락이 일본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연속논문중의 첫 번째 기사이다. 

(이 기사의 원제는 "Japan Goes From Dynamic to Disheartened"입니다. -> 원문 보기. 이 기사는 뉴욕타임스 2010년 10월 17일 1면에 게재된 글입니다. - 편집자 주)

http://www.nytimes.com/2010/10/17/world/asia/17japan.html?_r=1&hp=&pagewanted=all



▲     ©뉴욕타임스

오사카의 결혼식, 지금은 규모도 작고 예산도 줄였다. 한때는 신혼부부들이 선망했던 흥청망청의 예식은 아니다.

力動에서 挫折로 간 일본경제

일본 오사카 - 다른 세계의 선망이 되고 있었던 일본의 많은 중산층들처럼 마사또(Masato Y.) 는 20년 전에는 풍요롭게 살았다. 마사또는 조그마한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미화 50만불 되는 아파트를 샀다. 하와이로 여행을 갔으며 최신형 멜세데스 벤츠(Mercedes) 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그의 생활수준은 전체적으로 침체되는 일본경제와 함께 서서히 붕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해외여행을 줄이다가 결국에는 전부 취소하게 되였고 다음에는 멜세데스 벤츠를 팔고 값싼 일본차로 바꾸었다. 작년에는 그의 아파트를 그가 17년 전에 산 값의 1/3 값으로 팔았는데 집을 판돈으로 주택융자를 17년이나 갚고도 모자라서 돈을 더 꾸어야 했었다. 

일본은 사치스러웠고 上昇一路로 잘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은 침울하고 굴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49세의 마사또는 아직 주택융자에서 남은 11만 불의 빚을 못 갚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최근 역사에서 일본처럼 경제적 財富가 현저하게 뒤바뀐 나라도 없다. 아세아 성공국가의 원조인 일본은 1980년대에 가장 투기성이 많은 주식과 부동산 거품 속으로 들어가 서구가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던 금융부분에 도전장을 던진 첫 번째 아세아국가가 되였다.

지난 15년 이상 오사카의 주 유흥가에 있는 키타신지에서는 아주 멋진 俱樂部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있다.

그러나 1980년 후반부터 1990년 초반에 이르러 일본경제의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고 일본은 서서히 비참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막대한 예산적자나 홍수처럼 쏟아 붓는 放松銀根(easy money) 도 사정을 완화하지 못했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일본은 通貨緊縮이라고 알려진 저성장과 악성 나선형 가격하향의 함정에 걸려 괴물경제부터 전구적 경제까지는 생각도 못해보고 고사해버렸다.

▲     ©뉴욕타임스
지금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그들의 부채와 부동산거품으로부터 회복하려고 가진 애를 다 쓰고 있는 형국에 많은 經濟學家들은 미래가 캄캄한 나라로 일본을 지목하고 있다. 연방준비은행장 벤 버난키(Ben S. Bernanke) 까지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까지 동원해서라도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한편, 미국과 서구 경제가 장기간 저성장이나 최악의 경우 大恐慌이래로 일본 밖에서는 지속적인 개념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通貨緊縮에 부딪칠 것이라는 공포에 싸여있다.

많은 경제학가들은 미국은 일본의 經濟停滯(stagnation) 는 피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는 주로 미국의 정치제도와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에 대한 인내심에 대한 반응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처음에 자기나라의 심각성을 부정해왔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공사업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구조적 변화를 지연만 시켰을 뿐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스탠포드대학 경제학교수인 로버트 홀(Robert E. Hall) 교수는 “우리는 일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를 할 수 있게 하고 다시 투자를 하게하는 방법을 찾는다” 고 장담한다. 

그러나 아직도 연방정부의 지출과 예산을 줄이라는 압력이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에 다른 경제학가들은 일본화되는 것을 경종하고 있다. 즉 일본화라는 것은 소비자가 소비를 거부함에 따라 기업이 투자를 주춤하게 되고 은행은 현금 산더미 위에 앉게될때에 일어나는 수요붕궤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自增强惡循環 (self-reinforcing vicious cycle) 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값이 계속 내려가면 일자리는 사라지고, 소비자는 호주머니를 꽉 닫고 회사는 지출을 줄이고 확장계획을 지연시킨다.

미국, 영국, 西班牙(Spain), 愛尔蘭(Ireland) 들은 10여 년 전에 일본이 겪었던 것을 겪고 있다” 고 세계를 위한 일본의 교육이라는 책을 쓴 노무라 증권 수석 경제학가인 리차드 쿠 Richard Koo는 말하고 있다. 수백만의 개인과 회사들은 그들의 資產負債表 balance sheets 가 침수 되였기 때문에, 즉 부채가 자산보다 많기 때문에 돈을 꾸어서 지출하는 대신 빚을 정리하기 위해 현금을 사용한다.

통화팽창이 한 세대의 미국국민에게 흉터를 냈던 것처럼 통화긴축이 일본사람들에게는 刻印되어있을뿐더러 세대간 갈등과 비관주의, 운명론과 쪼그라든 기대감을 키워왔다. 일본은 그러나 여러 면에서 부흥하는 사회로 남아있겠지만 점점 증가하는 암담한 현실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북적거리는 동경의 외각으로 나가면 현저하게 눈에 뜨인다. 이러한 상황은 가장 참혹한 예측이 닥쳐오면 미국과 서구의 미래에 대한 있을 수 있는 瞥見별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원상태로 축소 되여야 하는 야욕

동경의 거리에서는 일본의 야욕이 쪼그라든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동경에는 콘크리트 마이크로 하우스(micorhouse, 微細屋)이 젊은 일본사람들에게 대유행이다. 이들은 움칫 도 못하게 빽빽한 부모의 집 정도도 살수 없을뿐더러 전통적으로 수십 년 상환하는 융자를 얻을 수 있는 직장도 못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냥갑 상자크기의 집은 SUV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을 정도의 땅에 세워져 있고, 옷장만한 침실, 여행용 가방만한 옷장, 잠수함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부엌 크기 정도다.

“이것이야말로 미래가 불확실해도 가질 수 있는 집이다” 라고 微細屋을 건설하는 자우스(Zaus)라는 동경에 있는 회사의 한 이사가 말하고 있다.

40세 이하의 많은 일본사람들에게는 한때 주식회사 일본 “Japan Inc.”은 미국전체를 자동차제조에서부터 초대형계산기까지 미국산업을 납작하게 만들었던 1980년대에서부터 이렇게 뒤떨어졌는지 이해를 못한다. 일본의 주가가 4배가 상승하고 엔화가 끝을 모르고 올라가면서 일본의 회사들은 全球的 사업(global business)을 장악하고 홀리우드(Hollywood) 영화 스튜디오 (Universal Studios and Columbia Pictures),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코스 (Pebble Beach) 와 미국의 상징적인 부동산 (Rockefeller Center)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1991년에 경제학가들은 2010년까지 일본이 세계에서 최대 경제국가로서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사실인즉, 일본의 경제는 그때와 꼭 같은 규모이다. 즉 일본의 GDP 는 지금의 환율로 $5.7 trillion 였고 같은 기간에 미국의 경제규모는 $14.7 trillion였다. 금년에 중국은 일본을 능가 세계 제2 경제대국이 되였다.

중국은 아주 완벽하게 일본을 능가했기 때문에 미국의 지성인들은 더 이상 일본에 개의치 않는다. 한때 미국대학에서 일본어 강의가 강의실을 꽉 매웠지만 지금은 텅텅 비어있다. 로날드 레간 대통령 행정부의 무역대표였던 푸레스토비치(Clyde V. Prestowitz)는 일본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하는 책까지 써서 한때 많은 경종을 일으켰지만 지금 그는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하면서 “나는 더 이상 일본에는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몰락은 일본사람들에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주식으로 수 십조 불을 잃은 회사나 마사또와 같은 개인이나 모두에게 가슴 아픈 일이었다. 지금 일본의 주식가치는 1989년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부동산에 있어서 집값은 거의 30년 전인 1983년의 집값과 동일하다. 일본의 미래는 더 암담하다. 일본은 국가의 빚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다. 총 GDP의 두 배가 된다. 인구는 감소하고 빈곤과 자살은 증가하고 있다.

▲     ©뉴욕타임스
침체된 아키꼬 오까(Akiko Oka) 씨는 원래 자기가 운영하던 가게는 문을 닫고 오사카 옷 가게에서 시간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일본이 활력소를 잃은 것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현저한 충격은 일본의 신뢰의 위기를 말한다. 약 20년 전만해도 일본은 야망과 힘으로 꽉 차있었고 傲慢(오만)할 정도로 자만에 꽉 차여있었으며 아세아에서 엔화에 기초를 둔 새로운 경제를 창조하겠다는 열의에 차있었다.

한때는 모든 것을 다 집어먹었던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제조업마다 배고픈 한국이나 중국에 두 손 다 들은 것 같다. 한때는 일본의 소비자들은 만하탄이나 파리로 비행기에 꽉꽉 실려 구매여행 (shopping trips)을 했던 일본사람들은 지금 집에 처 박혀 앉아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돈을 저금하고 있으며 우니그로 (Uniqlo Co., Ltd. (株式会社ユニクロ, Kabushiki-gaisha yunikuro: 한국에도 일본의 유니그로가 들어와있다) 와 같은 싼 상품으로 근검절약의 새 풍조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부유한 국가인 일본이지만 생활수준이 점점 나빠지면서 경제정체나 통화긴축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젊은 일본세대들도 새로운 절약의 풍조가 확연하게 눈에 띈다. 이들은 자동차나 TV같은 巨額項目을 사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도 가지 않는다.

일본의 진취성 상실은 젊은이들에게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젊은이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장시간 사무실에서 일만 하고 연애가 성공해도 별 의지도 보이지 않는 풀만 뜯어먹는 초식동물로 조소를 받는다. 이는 반 농담으로 줄어들고 있는 일본인구가 이들에게 있다고 이들에게 탓을 돌린다. “일본사람은 경제적 동물이라고 불리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동물적 정신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고 昭和電工株式会社(Shōwa Denkō Kabushiki-gaisha)의 전 사장이었던 미쑤오 오하시(Mitsuo Ohashi) 씨는 말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몰락에 관해서 면접(interview)을 할 때, 일본사람들은 정책수립 자나 기업총수에서부터 거리에서 장바구니를 맨 사람들에 까지 일본의 생동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경악스럽게 말하곤 한다. 일본이 많은 문제를 껴 앉고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일본사회의 노령화다. 한때는 부유하고 력동적이었던 나라가 깊은 사회적 문화적 다람쥐 채 바퀴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이 세계에 주는 명백한 교훈이다.

通貨緊縮의 유령에 관한 경제학적 설명은 이렇다. 즉 개인이나 사업들이 돈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의욕을 없애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가가 내려가면 해야 할 합리적 방법은 돈을 손에 거머쥐고 있음으로 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거이 한 세대 동안 통화긴축은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했고 잠재의식적으로 일본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먹칠을 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비관론을 키워왔고 본능적으로 소비나 투자를 꺼리게 하였다. 결국 수요를 위축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값을 내리게 했다.

“일본에서는 물건을 산다든가 돈을 꾸는 것은 불합리하며 어리석은 것이라는 새로운 상식이 생기고 있다” 고 통화긴축의 심리를 연구하는 동경 와세다대학의 가주히라 다게무라(Kazuhisa Takemura)교수는 말한다.

쪼그라든 도시 오사카

일본경제의 파장이 전국으로 그 영향을 피부로 느끼지만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오사카(大板) 주변은 비교적 번창한 동경보다도 더 심각하다. 자부심이 강했던 상업도시 오사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겁에 질린 구매자들을 설득해서 돈을 더 쓰라고 갖은 애를 다 쓴다. 그러나 이는 종종 가격경쟁을 부추겨서 일본의 통화긴축 螺旋을 더 악화할 뿐이다.

自動售賣機에서 罐装饮料(관장음료) 한 개에 10엔 하는 것을 식당에서는 50엔에 판다. 아파트도 첫 달에 100엔으로 내놓고 결혼식도 賤賣(discount sale)를 하는데 예식장 빌리는 값이 약 $100, 이는 10년 전 값의 1/10이다. 

오사카 상점거리인 せんばやしどっとこむ 千林商店街의 상인들도 많은 품목을 100엔에 파는 100엔 날을 거행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일본사람들이 예쁘게 보이려는 욕망까지 다 잃어버린 것 같았다 고 63세의 아키오 오카(Akiko Oka) 는 말했다. 그녀는 2002년 자기 개인의 옷 가게가 파산한 이래로 조그마한 옷 가게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의욕은 이주 이상한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北新地 きたしんちえき는 오사카의 일류 遊興地 이다. 300년 역사를 가진 오락장소인데 밤에는 네온 전등과 짝 달라붙은 옷 매의 여종업원에 일등 자리 값만도 500불이 넘는다. 

지난 15년 사이에 夜總會(Night clubs)와 客廳(lounges)의 수가 1200개에서 480개로 줄어들었고 그 자리는 값싼 술집이나 연쇄식당으로 대체 되였다. 調酒師들(Bartenders)은 한결같이 요즈음 고객들은 너무 가격을 의식하기 때문에 한동안 최고로 세련되였다는것, 즉 돈에 별로 개의치 않는 태도마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아주 특별한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고 다카오 오다(Takao Oda)는 자기의 술집 오다의 금칠로 번쩍거리는 酒吧台面(countertop) 뒤에서 鷄尾酒(cocktails)를 잘 섞으면서 말했다.

오만 방자한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일본은 그들의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난해 불만에 꽉 찬 유권자들이 2차 대전 후 거의 독점해오던 自民黨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에게 이는 너무 늦었다. 일본은 이미 生來就有的權利(birthright) 라고 생각했던 안전한 직장이나 올라가는 생활수준을 즐길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을 버린 젊은 세대로 바뀌었다. 

24세의 유카리 히가키(Yukari Higaki) 는 자기가 아는 경제조건이란 물가와 월급이 영구히 내려간 것 같은 그런 조건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활인매장에서 값싼 옷을 산다든가 점심은 집에서 만들어간다든가 해외여행은 아주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저축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세대는 아직도 여유 있게 살지만 최악의 사태가 올 것을 준비해서 몸을 옹크리고 방어태세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존세대다” 라고 히가키는 말한다. 그녀는 가구점에서 시간으로 일한다.

일본소비자시장조사연구소인 JMR生活総合研究所의 히사카주 마추다(Hisakazu Matsuda) 소장은 일본소비자들에 관해서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20대의 일본 젊은이들을 “소비 증오자” 라는 다른 이름으로 표현한다. 이들 20대가 60대가 되면 그들의 절약습관은 일본경제에 4천2백억 불($420 billion)의 소비경제에 손해를 끼친다고 계산한다. 

이세상에서 이와 같은 세대는 없다면서 “이 젊은이들은 돈 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덧붙였다. 

통화긴축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가격과 이익이 하락만 하지 상승할 줄 모르는 경제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요시노리 가이아미(Yoshinori Kaiami) 씨는 오사카에서 복덕방에서 일한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마찬가지로 이 일대도 땅값이 지난 19년 동안 계속 하락 하고 있다. 그의 사업은 정말로 힘들다. 땅에 투자하면 망하는 게 확실하기 때문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집은 집값보다 더 많은 빚을 질머지고 있기 때문에 파는 사람도 거의 없다.

수년 전 이러한 交通阻塞(gridlock)를 깨기 위한 생각을 내 놓았다. 그는 교묘한 법적 詭計를 써서 집 소유자로 하여금 개인파산을 하게한 다음 원래의 빚을 없애버리고 계속 살면서 친척에게 헐값으로 팔면 친척은 돈을 조금만 빌려도 살수 게 하는 것이다.

통화팽창이 다시 일어난다면 물론 이런 사업은 필요가 없다” 고 말하는데 이는 물가상승은 통화긴축의 반대말로 얘기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물가상승이 되돌아 오려면 아마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고 고백한다.

자기 고객중의 한 사람은 15년 전에 50만 불을 주고 산 침실이 4개있는 연립주택(condo)을 자기 친척에게 15만 불에 팔았다. 그러고도 남은 은행 빚을 개인파산을 선고해서 말소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고 말한다.

경제학가들은 통화긴축이 自家持續性이 되고 있는 이유는 회사나 마사또(Masato)와 같은 사람들이 값을 깎아서 생존하던가 새로운 물건을 사거나 투자하는 대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서 생존하는 것이다.

통화긴축은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험을 말살한다. 창조적 파괴는 파괴적 파괴로 대체되고 있다” 고 게이오대학의 경제학교수 슘페이 다케모리(Shumpei Takemori)는 역설한다.

스티브 로어(Steve Lohr)는 뉴욕에서 기고한다.

필자 강성종 박사는 1969~70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세계적인 뇌과학자입니다.
현재 뉴욕에서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과 치매를 치료하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진보·좌파 성향의 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주요 약력
한국인 최초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 게재(제1저자-1969,1970년)
전 미국 뉴욕시립대학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교수(1968-94)
전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교수(1975~78)
전 서울대 AID교수(78-79)
전 중국 천진대학 자문교수(86-94)
전 한효과학기술원 원장(89~95년)
현 뉴욕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장(치매/우울증)

* 저서
<한국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말한다>(라이프사이언스 펴냄)
<당신의 두뇌 안녕하십니까?>(라이프사이언스 펴냄)

* 강성종 박사 블로그 : http://quovadis.tistory.com/
* 강성종 박사 트위터 : http://twitter.com/quovadiskorea
 
기사입력: 2010/10/22 [18:06]  최종편집: ⓒ 대자보

Posted by 쿼바디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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