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번 년말 년시, 우리는 저를 포함해서 그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광고를 뿌리듯이 텅 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콤퓨터 앞에서 트위터를 하고 있는 우리는 그나마 좀 다행한 사람들입니다. 

두개의 한국이 있다면 우리는 그래도 좀 괜찮은 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한국> 은 트위터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들은 우리를 원격조정하고있습니다. 

조지 오웰(George Owell)의 1984년 이라는 소설에서와 같이 大兄은 우리를 항시 감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소통하지못하는 두개의 한국이 존재하는한 한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금년 2010년에는 그런 장벽을 깨야 될것 같습니다. 

두개의 한국은 이북과 이남을 얘기하는것이 아니라 <남한안에 존재하는 두개의 한국> 입니다. <마음에 않들면 빨갱이로 모는 한국> 과 <빨갱이로 몰리는 한국> 이 있습니다. 이는 이념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경제, 문화, 교육, 삶의질 등을 포함해서 사회전반에 걸쳐 있는 얘기입니다.

 대학등록금을 제 마음대로 올리는 한국,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꿔서도 등록금을 마련해야하는 한국. 은행이자를 마음대로 정하는 한국,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위해 별짓을 다해야하는 한국. 그러다가 지쳐 쓰러지면, <제3인간> 의 대합실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이 <제3인간> 의 대합실이 점점 꽉 차게되면, 그때 터지는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오늘 년말, 년시를 맞으면서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면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단편소설 Balek 家의 저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저울에 자난 60년을 속아왔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카트리나 부룸의 잃어버인 명예> 라든가 <사랑이 없는 십자가> 등의 작품이 우리에게 제시하는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해가 되였으면 하기때문입니다. 

정말로 금년에는 남한안에 있는 두개의 한국사이에 소통이 가능한 해가 되였으면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제가 Frank Rich 의 뉴욕타임스 논설을 번역해서 제 Blog 에 올린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참조 하시길 바랍니다. 

남한안에 있는 두개의 한국! 한국에 있는 글 쓰는사람들은 뭘 합니까? 덕국은 Heinrich Böll 같은 분들의 경종이 있었기에 그리고 국민이 귀를 기우렸기에 오늘의 덕국을 유지하고 있는것입니다. 

또 하는 소리입니다 마는 새해는 건강하고 두개의 한국 사이에 소통이 있고, 또 이 두개의 한국이 하나의 한국이 되길 기원하면서 뉴욕에서 강성종 올립니다.

[계속]

제가 지난번 드린 신년인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오늘 년말, 년시를 맞으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단편소설 Balek 家의 저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저울에 지난 60년을 속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카타리나 부룸의 잃어버린 명예> 라든가 <사랑이 없는 십자가> 등의 작품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해가 되였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잘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혹시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분을 위해서 약간 설명을 하고 져 합니다. 제가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카타리나 부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영어로는 The Lost Honor of Katharina Blum” 는 한국어로 번역 되였을 것 같고, 또 영화도 나왔으니 쉽게 접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바렉家의 저울은 Heinrich Böll 의 단편집 속에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 없는 십자가” 는 출판에 어려움을 겪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 히틀러 정권이 무너지면서 처음 나온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용산참사에 분노 하시는 분들은 반듯이 이 책 "카타리나 부룸" 이나 영화를 보셨으면 합니다. 특히 집권 세력인 이명박과 그 밑에서 칼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더욱 더 꼭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번 휘두르는 칼이, 마구 뱉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지 알아야 합니다. 용산참사는 카카리나 불룸 입니다. 아마 더할것 같습니다.

두 번째, 아니 첫 번째 “바렉家의 저울”은 덕국의 소학교재에도 실릴 만큼 일반적인 예기입니다. 원명은 “Die Waage des Baleks” 이고 영어로 번역된 것은 “The Balek Scales” 입니다. 우리말로도 틀림없이 번역 되였을 줄 압니다. 저울이라는 것은 공정성을 말합니다. 서양에서는 많은 법원 건물에는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든 여신상(女神像)을 많이 보게 됩니다. 왜 눈을 가렸을 가요?

만일 이 소품이 번역되지 않았다면, 누구든지 번역을 해서 Blog 에 올려 놓고 우리에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주 짧은 글입니다.

저는 저울이 덕국어로 Waage, 영어로는 scale 혹은 balance 인데 혹시 하고 사전을 뒤져보니까 중국사전에는 天平이라고 되여 있더군요. 사실 저는 저울을 천평이라고 하는 예기는 너무 오래 전에 사용하던 것이라 좀 가물가물 했었습니다. 사전을 접하고 깜짝 놀랬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하늘 天자에 平자는 고르다, 다스리다, 평평하다 등으로 해석을 하더군요. 그래서 “저울은 하늘이 다스리는 것” 이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바로 이 저울을 속이고, 고치고, 남용하는 것이 오늘날의 일부 한국의 법관들이고 보면, 아마도 천벌(天罰)을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天平을 어기면, 즉 저울을 속이고 어기면 천벌을 받는다. 欺天平必天罰 혹은 逆天平必天罰. 한문은 참 기막힌 말입니다. 단어 한 개 만드는데도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왜 그 까짓 것 저울에 하늘 天 字까지! 그 까짓것이 아니라는것을 배웠습니다. 바렉가의 천평은 우리를 얘기하는듯 합니다.









Heinrich Böll 은 戰後作家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덕국에는 이런 작가들이 많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저는 처음에 황석영이라는 작가한테 좀 기대를 해보았는데 이상하게 도중 하차 하더군요. 도중 하차라는 제 표현은 글 쓰는 것을 중지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변질되어가는것 같아서요. 소설가고 과학가고 일단 내 놓으면 자기 것이 아닙니다. 못 주어담는것! 그리고 그것은 共用입니다. 그래서 글은 무서운것입니다. 더러운 글은 공용할수없기 때문입니다. 공용했다가는 흑사병처럼 사회에 번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 쓰시는 분들, 쓰레기는 고만 썼으면 합니다. 인쇄된 종이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정신적 공해는 버릴 때도 마땅치 않습니다.

Posted by 쿼바디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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