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in the Air’, 공중에 떠있는 미국인의 운명은? [ 인터넷신문 대자보 기고 ] | |||||||||||||
[국제동향] 미국의 暗鬱한 한해를 장식하는 홀리우드의 기막힌 完結版 | |||||||||||||
역자 주: 미국에서는 이번 크리스마스와 신년 휴가의 흥행물로 “Up in the Air”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Up in the Air 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가 있겠는데, 저는 “공중에 떠서”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불확실”하다는 뜻도 되고 “미결정”이라는 말도 됩니다마는 글자 그대로 “공중에 떠서” 가 이 글을 더 가깝게 대변하는 듯 합니다. 특히 돈 작난을 하는 족속들이 나라와 백성들을 망치고 있는 이번 겨울, 한번 생각 해볼만한 영화로 이 글을 번역했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에 내년 2월쯤에 상영한다고 합니다. 이 글에서 Frank Rich 가 말하듯이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二分法이 우리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미국도 한국도 또 어떤 사회이든지 사회가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막판이 되면, 나라의 멸망은 불 보듯이 명확한 것입니다. 왕안석 재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宋 나라는 결국 40년 후에 망했습니다. (1) “Mad Men 廣告狂人” 은 영화제목으로 중국은 廣告狂人으로 번역 되였고 일본에서는 그대로 マッドメン 으로 상영 되였습니다. 여기서 광고광인이라고 한 이유는 세계 광고회사가 뉴욕의 Madison Avenue 에 집결되여 있기때문에 여기서 Mad Men 은 Madison Avenue Men 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따라서 광고광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2) TEA(Taxed Enough Already)는 세금을 내지말자는 운동을 하는 주로 공화당의 운동이며 애매한 홍차만 강에 버리는 무모한짓을 하고있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차 파티로 알려진 이 모임은 민주당을 격하시키는 모임으로 보면 됩니다. (3) 역자는 이 영화 “Up in the Air”와 영화 “Mad Men 廣告狂人” 이라는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기사를 번역 했음을 알립니다. 번역이 정확하게 영화를 대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번 성탄절, 홀리우드는 아마도 사실 같지 않는 년말휴가 흥행물로 전 미국을 덮을 것이다. “Up in the Air(공중에 떠서)” 라는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가 주연을 맡은 새로운 영화가 대도시에서 시작해서 미국 전역 2천 개의 영화관에서 동시 상영한다. 조지 클루니는 오마하(Omaha)에 근거를 둔 조그마한 외포 승판상(外包 承辦商 outsourcing contractor)인 리안 빙함(Ryan Bingham)의 역을 맡는다. 리안 빙함은 남들이 꺼려하는 회사의 고용인을 해고하는 일을 도맡아서 하는 회사의 로상무사(路上武士 Road Warrior)이다. 그 많은 도시에서 그 많은 사람을 해고하고 다니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비행기 회사의 비행상객(飛行常客 Frequent Flier)으로 신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를 가진 영화가 수십 년간 최대의 실직율로부터 굴러온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성탄절의 대인기가 될 수가 있단 말인가? 현실세계에서 점점 썩어가고 있는 국민적 상처를 流行文化(pop culture)의 힘으로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Up in the Air(공중에 떠서)” 라는 영화는 정치적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마이클 모어(Michael Moore) 나 아인 란드(Ayn Rand)와 같은 자본주의 논쟁으로 혼돈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인애(仁愛)를 회복하려는 主人公 리안(Ryan)의 분투항쟁이다. 여기서 영화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배경은 그저 원시적이지만 오늘날 이는 화면 전면에 나타나는 클루니에 의해서 감동적으로 세분화된 개인적인 연극이라기보다는 더욱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한 미국이 있다. 생활에 지친 미국사람들은 그들 앞에 가로막고 쌓여있는, 그러나 그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힘에 의해서 원격조정을 당하고 있는 경제적 벽을 실감하고 있다. “Up in the Air”는 폭소와 섹스로 살포된 뻔질뻔질한 작품일지는 몰라도 70년 전 홀리우드에서 제작한 “분노의 포도(Wrath of Grapes by John Steinbeck)” 가 당시 대공황을 그린 것이라면 이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더 생생하게 오늘날의 대 불경기의 지형도를 어느 영화보다도 더 침울하게 그린 것이어서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소매업은 20%가 감소 되였고, 사장인 리안 빙함은 회의실에서 자기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 산업은 쓰레기장이 되였고, 주택시장은 심장박동이 중지 되였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나쁜 시기중의 하나다. 자 이젠 우리 때이다.” 사실 그렇다. 항상 이 비행장에서 저 비행장으로 날라 다니면서 빚에 쪼들려 해고를 해야 하는 문제의 기업에 낙하한다. 그리고 류수작업선(流水作業綫 Assembly line) 의 숙련공들을 해고한다. 리안도 그렇지만 리안의 부하, 해고전문가들도 물론 해고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해고 대상자에게 “이제 나가게 되였다. 개인적 감정으로 받아드리지 말아달라” 고만 말할 뿐이다. 그리고 빤질빤질한 종이에 잘 포장한 해고금(解雇金)을 나눠준다. 그리고 입원환자 앞에서 염불이나 기도문을 읊듯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다” 라고…… 그리고 곧 바로 해고당한 고용인들의 짐을 꾸려 회사의 후문(後門)으로 내보낸다. 리안 빙함 회사에는 코넬대학 출신인 정력이 넘쳐 흐르는 젊은 새 여직원이 있는데 그녀는 해고하는 전문직까지 줄이자는 혁신적인 전략을 내놓는다. 여행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그녀는 회사를 찾아가서 해고할 것이 아니라 장거리 전신회의를 통해서 해고하자고 제안한다. 콤퓨터 화면에서 각 계급의 해고공학자들(termination engineers)과 고용인 해고 작업류정(作業流程 Employee Termination Workflow) 이라는 대사를 읽으면서 해고임무를 수행하자는 것이다. 試演(시연: 미리 연습해보는 것)에서 실험동물은 무뚝뚝한 57세의 사무직 직원이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서기를 거절하고 분노와 울음의 발작을 연속한다.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약탈자에 의해서 암살당하는 장면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는 데트로이트(Detroit) 이지 와지리스탄(Waziristan: 아프카니스탄의 한 오지)은 아니다. 월터 컨(Walter Kirn)의 2001년 소설에서 따온 “Up in the Air” 에서 실재가 아닌 영화내용들은 영화감독 재이슨 라이트만(Jason Reitman)이 데트로이트(Detroit) 와 샌트 루이(St. Luis)에서 촬영하는 동안 실재로 해고당한 고용인들과의 행한 면접을 편집하여 영화의 앞뒤에 삽입시켜서 영화를 마감한다. 그 감독은 면접에 응한 사람들에게 그들을 쫓아낸 인적자원과(인사과) 관리들에게 무엇을 말했고 또 말하고 싶은가 라고 물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에서 보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가정에서 주검과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말하면,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내 가족이고 그리고 나는 죽었다는 느낌뿐이다” 라고 실토를 했다. 최근 고용계획(雇傭計劃)을 확장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가끔 와싱톤에서 거품을 깨는 것은 어렵고 우리는 통계 뒤에 숨어있는 인민의 생활과 그들의 가정을 위해서 올바른 일을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가 빨리 스쳐가기는 하지만, 사실이지 이 영화에서 우리는 통계의 뒤에 감춰저있는 우리의 생활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초점은 대량실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라는 要旨(요지)를 전달하는 것만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즉 최근 뉴스만을 전달하기만 한다면 영화나 정치인은 필요치 않다. 우리의 대 불경기에 이 특별한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영화가 끝까지 우리 마음에서 못 떠나는 것은 해고를 제 마음대로 하는 기업문화와 우리 사이는 아무런 관계없이 꽉 막혀있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즉 좀 단순화하자면 금융가(Wall Street)와 종로(Main Street) 사이에 있는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二分法일 것이다. 이러한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무관심은 금융가와 우리 민초들 사이에 있는 엄청난 수입의 격차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이는 또한 돈을 퍼부어서 금융가의 경솔한 도박에 희생당한 순진한 사람들을 사기 치면서 경제를 망쳐놓은 무책임한 은행들을 구제해준 정부의 불공정성 만도 아니다. “Up in the Air” 가 우리를 사로 잡는 것은 교해적(敎誨的)인 것도 아니다. 이는 금융붕괴 훨신 이전에 있었던 두 개의 미국 사이에 열려있던 문화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까지 깊은 골을 만든 것이다. 교환권 같은 확실한 회사의 주식만 팔아왔던 사모고권(私募股权 Private Equity) 決策者(deal makers) 들은 私募股权을 빚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 다음에 교활한 재정적 약탈로 순진한 노동자들에게 그 빚 덩어리를 뒤집어 씨워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렇게 해좋고는 자기 때문에 거지가 된 노동자들에게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쓰레기抵押(Junk Mortgages)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서 그리고 商品包束(bundle)으로 둔갑시켜 有價證券처럼 팔고 있는 와싱톤 정가와 뉴욕금융가의 사기천재(詐欺天才)들은 주택거품이 터지자 주택대출을 받은 사람들이나 소액투자자나 은퇴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 씨우고 망쳐놓는다. 물론 그들은 자기가 망쳐놓은 사람들의 동내에서 살지 않는다. 금융계를 망쳐놓은 사람들은 그 들의 행동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안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이 그렇게 보호하고 있다. 적절한 예는 전 시티은행 총수였고 현재 오바마 정부의 재무부장(Tim Geithner)과 최고 경제자문(Lawrence Summers)의 스승인 로버트 루벤(Robert Rubin)이다. 루벤은 그의 은행(당시 시티은행 CEO)을 멸망상태의 높은 위험성 속에 쳐 박아놓고 서도 도박을 감행, 현금을 챙겨서 나눠 갖고 시티은행을 떠날때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납세자에게 자기가 부셔놓은 파선된 조각들을 지불하도록 모든 것을 떠 넘기고 자기는 “나 몰라라” 하고 도망쳐 버렸다. 역자 주: Robert Ruben 은 한국이 IMF 경제위기 때, 미 재무 장관으로 아세아 재산을 똥값으로 만든 다음 다 사들여 부를 챙긴 각본을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Mad Men(廣告狂人)” 이라는 영화에서 “사람들이 다 미쳤어” 이번 계절에 말 그대로 지칠 대로 지친 한 중역(重役)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지지자들은 술에 취한 사무실 파티 사고가 영화의 가상적인 매디손가 광고대행점인 스터링 쿠퍼(Sterling Cooper)를 먹어 삼키고 向下化한 영국회사에서 온 감독관을 불구자로 만드는 장면을 즐겨 보고 있었다. 얘기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Mad Men(廣告狂人)”은 그것이 오늘날의 기업문화를 예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교감이 되는것이다. 최근 정절주선(情節主線 plot line)은 스터링 쿠퍼(Sterling Cooper)의 막강한 고객이며 호텔 계 거두인 콘라드 힐톤(Conrad Hilton)의 多變的 陰謀를 다루고 있다. 우연 일치로 두 영화의 주제가 서로 맞장구를 치고 있듯이 “Up in the Air” 는 주인공 리안을 “Mad Men 廣告狂人”의 코니 힐톤이 즐기는 하수인의 열성만 가지고 충성만을 약속하는 힐톤 명예회원제도의 특권층회원카드 소지자로 묘사하고 있다. 역자 주: Mad Men(廣告狂人)은 미국에서 2007년부터 방영하는 TV 연속극입니다. 지난주 골드만 삭스는 정부가 쏟아부은 덕택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기록적 수익을 올렸으나 여론의 분노를 무마하기 위해서 주식으로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국민의 그러한 분노에 대해서 이상하게도 모르는척하고 있다. 2009년 첫 3분기간(1월에서 9월까지)에 금융산업(은행/증권)들은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고 구워삶는데 3억 4천4백만 불을 사용하여 재정 개혁을 막기 위한 포진을 하고 있었다. 그 뿐인가? 월街의 쓰래기주식에 AAA라는 도장을 찍어주는 신용평가회사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시티은행이나 미국은행(Bank of America)는 불량자산구제계획(不良資産救濟計劃 TARP: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의 돈을 돌려주려고 난리다. 이는 그들의 경제가 회복 되여서가 아니라, 경영진에게 면죄부를 주고 무제한 상금 보너스로 소나기 같은 돈 세례를 받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현 상태에서 야기되는 분노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참말 같이 들리지는 않지만, TEA(Taxed Enough Already)라는 극우단체의 정치적 영웅인 론 폴(Ron Paul)과 짐 드민트(Jim DeMint)와 함께 진보진영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버니 산더스(Bernie Sanders) 와 알란 그레이손(Alan Grayson)은 연방준비은행과 은행장인 벤 버난키(Ben Bernanke)를 비방하는 공동목표를 만들었다. 연방준비은행은 모든 죄악의 뿌리는 아니다. 그러나 속죄양(회생양 替罪羊)을 만들기는 쉽다. 경제호황 때, 감독하지 못한 기구들처럼, 연방준비은행도 투명성도 없이 높은 위치에서 해야할 권력을 아래로 내려 보내고 안주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나 그 어느 다른 회사에도 마찬가지로, 성탄절쯤 해서 최근 일련의 해고가 완벽하게 이루어 질것으로 본다. 해직에서 겨우 살아남은 노동자들에게도 이는 가정에서 연쇄주검과 같을 것이다. 누가 감히 이런 비극이 끝났다고 믿겠는가? 경제가 회복 되였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와싱톤 정가와 뉴욕의 금융가의 파렴치한 인간들에게는 밑바닥에서 해 매는 미국인의 운명은 별 다를 것 없이 공중에 떠있는(Up in the Air)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원문 출처: http://www.nytimes.com/2009/12/13/opinion/13rich.html?_r=1&scp=8&sq=frank%20rich&st=cse 뉴욕타임스 푸랑크 리치(Frank Rich) 2009.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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