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과 정동영의 북방정책(Nordpolitik) | |||||||||||||||
[신년기획] 안녕하지 못한 대한민국, 북방정책으로 돌파구 열어야 | |||||||||||||||
새해 2014년은 불안하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욱 더 불안하다. 2013년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길래 불안한 것일까? 사실 2013년을 회고해보면 부마사건이나 5.18광주 대학살 같은 특별한일이 없었다. 자연재앙도 기록할만큼 큰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안해한다.이는 마치 비와 폭풍이 들여닥치지도 않았는데 비와 푹풍이 들여닥칠것만 같은 하늘이 캄캄하고 무슨일이라도 일어날것만같다. 杞人憂天,즉 쓸데없는 걱정일까? 風前燈火 한국의 미래 쓸데없는 걱정이 결코 아니다. 2013년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국정원선거개입이 화두가 된 해다. 2012년 대선기간중 국정원선거개입이 화두가 되지않았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면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에서도 아니 무슨 선거에서도 마치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해오고 있었다. 마치 발렉家 (Heinrich Böll, Die Waage der Baleks)의 저울을 의심하지 않고 우리는 대대로 사용해온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녕한줄도 모르고 그냥 살아왔다. 국정원을 의심하는 것은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84)의 大兄을 의심하는 것처럼 가장 큰 범죄에 해당한다. 한국의 大兄은「나는 북조선의 위협으로부터 너의들을 보호한다」라고 집집마다 방방마다 확성기로 불어댄다. 조지 오웰의 소설처럼 사상범죄 (Thought Crime)가 설정되고 사상경찰 (Thought Police)이 곳곳에서 검문(檢問)을 한다. 이런 중대한 국가과제를 송두리째 안고 2014년으로 그대로 넘어간다. 그래서 온 국민은 2014년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2014년은 나라재산 팔아먹는 해가 될 것 같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과 옥신각신하는 두려운 해가 된다. W.H. Auden은 정신적 어머니처럼 생각해온 Elizabeth Mayer에 보내는 새해의 편지라는 長篇詩속에서 이런말을 한다: 이 땅에 찾아오는 새해가 두렵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이미 그들이 꾸며낸 말이고 시끄러운 장사꾼들의 구호일뿐입니다. 가난한사람들은 잔꾀의 머리를 굴리는 아첨쟁이들의 손에서 배신을 당하고 진실은 기성세대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며 젊음은 송두리체 빼았기고 맙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예언한다. 폭정과 무력의 홍수가 일어날것이며 自我의 대기층과 두려움의 더 높은 高度에서 오류의 립자가 우뢰와 폭풍을 형성하여 양떼를 모는 목자를 죽일것이며 우리의 정치적 고뇌는 자아의식과 냉철한 정신세계의 색욕으로부터 내려옵니다. 그러나 W.H. Auden 은 새해의 편지라는 시를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당신 같은 분이 계십니다. 항상 용서하고 우리가 무엇을하던 도와줍니다. 매일 잠잘때나 일할때마다 우리의 生死는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하며 사랑이 다시 도시와 사자굴에 빛을 비쳐 세상의 분노를 잠재우며 젊은이들의 旅路 (갈길)를 다시 밝게해줍니다. 절망속에서 詩人 Auden이 보내는 희망의 소식 (Message)이다. 사랑의 소식이다.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자. 이승만시대를 암살의 시대 (Age of Assassination) 라고한다면 군사쿠테타로 시작한 박정희의 시대는 협박 (Age of Menace) 의 시대였다. 5.18 대학살을 치룬 전두환의 후기부터 아편의 시대 (Age of Opium) 로 접어든다. 2차대전이후로 김대중 노무현 10년을 빼고는 한국역사는 통일을 범죄시해왔다. 통일을 얘기하면 암살을 시켰고 그게 안되면 간첩으로 사형을 시켰다. 이는 우리역사의 전부를 말한다. 협박은 저항에 부디첬고 드디어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태동과 함께 총칼은 아편으로 대체된다. 금전지상주의 (金錢至上主義 mammonism) 를 미덕으로 교육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무한경쟁이라는 틀속에서 밤낮을 모르고 일해왔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해서?라는 질문을 던지면 사상범죄가 되고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는다. GNP 4만 달러! 그리고 허상의 공약속에서 우리는 눈을 뜨지못했다. 2013년의 해가 지면서 한 학생이 안녕하십니까?하고 물었다. 내가 안녕한가? 안녕하지는 못하지만 이런말을 하면 취직도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러한 질문조차 피했다는 사연이다. 즉 대형을 의심하는 무서운 죄에 속한다. 오시니아 (조지 오웰의 가상국가)의 국가보안법에 걸린다. 과연 우리는 안녕한가?라는 자문자답으로 우리는 2014년을 맞이한다. 2014년 새해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남종은 「제가 두려움 다 안고갈 테니 일어나 달라」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기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자살을 한다. 2014년은 두렵다. 그러나 이남종은 두려워 하지말라고 한다. 국민저항은 날로 증폭되고 그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권력 사용과 투입또한 雪上加霜으로 증가하고있다. 이 문제는 KTX철도 개인화(민영화), 무더기 해고로 이어졌고 드디어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각 대학교의 대자보로 대학가가 술렁거리고 있다.(☞ 대자보 전문보기)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27)는 10일 오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손으로 써 교내에 붙였다. 9일 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4213명이 직위해제되고, 밀양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는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주현우는 이어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 (장하나)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이다"고 적었다. 잠자고 있던 고려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자보 게시물에 댓글이 수십건 달렸다. 한 학우는 "안녕 못합니다. 그렇다고 나갈 용기도 없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함부로 나섰다가 기득권 눈밖에라도 나면 취직도 못하고 목숨줄이 그들에게 있으니 어찌 대항하겠습니까. 용기없는 자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라고 밝혔다. 목숨줄이 그들에게 있다! 09학번 강훈구'라고 밝힌 학우는 '즐거운 일기'라는 글에서 "나는 이 글을 보고서야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입학하던 해 용산에서 6명이 불에 타 죽었지만 교수, 선배, 친구 아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다 이렇게 사는가보다 생각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는 안녕하냐' 묻는 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우리는 오랫동안 파시즘 (Fascism) 혹은 파시스모 (Fascismo) 정권하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60년 동안의 괴리(乖離)를 받아드리고 이게 정상이라고 믿어왔다. 발렉家의 저울처럼…그래서 비정상이 정상보고 비정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정상과 정상의 차이를 구별못하게끔하는 교육과 선전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대형은 한국에서 성공했다. 우리는 이렇게 계속 사는것인가? 역사는 그렇지않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럼 우리는 어데에 와 있는것일까?2014년은 우리가 어쩌다가 기점 (奇点 Singularity) 까지 와있게된 해다. 기점은 과학적 수학적 용어다. 더 이상 갈수없는 이상한 점을 말한다. 콤퓨터의 창시자 존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n)은 기점을 이렇게 정의한다: 점점 가속화되고있는 기술은 인류역사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人間事 (Human Affairs) 에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限界点이다 라고 말하 고있다. 이 점을 넘어서면 기술적 발전은 걷잡을수 없게 되여 인간을 위한 기술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John von Neumannn의 정의를 한국정치에 대입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데있는지 정확하게 알수가 있다. 奇点은 모든분야에 존재한다. 과학기술에서부터 중력(重力Gravitation)흑동(黑洞Black Hole) 을 거처 사회과학에 일으기까지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있다. 바로 이 기점(奇点)에 한국의 정치가 당면하고있다. 이 기점은 분자생물학에서 말하는 헤이푸리크 한계 (Heyflick Limit)를 의미한다. 세포는 분열한다. 분열할때마다 일정 기리의 단립 (端粒 Telomere) 이 끊어진다. 세포분열이 일정 수치에 도달하면 이 DNA 끝부분에 붙어있는 단립이 없어지고 세포는 죽는다. 즉 생물기점에 도달했다는것이다. 한국정치가 기점에 와있기 때문에 이제 자체수정으로는 불가능하다. 즉 자체로 죽거나 죽게 하는것이다. 이를 우리는 정서세포사 (程序細胞死 Programmed Cell Death) 혹은 조망 (凋亡 Apoptosis)이라고 하며 생명을 새롭게 계승시키는데 절대로 필요한 과정에 해당한다. 필요없는 것을 죽임으로서 다른 생명이 산다는것이다. 생물학가들은 안다. 정서세포사는 삶을 위해서 죽는것이라고… 즉 이는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계속되여 나간다는것이다. 생물학에서 보면 해이푸리크 한계를 벗어나야한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는 곳이 딱 한군데있다. 이 곳에서는 즉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精子 (Sperm)와 卵子 (Ovum)에서는 단립이 짤라나간다든가 줄어들지않는다. 老子가 道德經에서 말하는 一生二 가 아니라 二生一 인것이다. 이 새로운 一은 새로 시작한다. 이 새로운 범식 (範式 Paradigm) 은 어떻게 시작되는것일까?새로이 태동하는 정신의 힘은 우리의 지혜가 좌절하지않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太公은 六韜에서 이렇게 말한다: 天下非一人之天下,乃天下之天下也 천하비일인지천하,내천하지천하야 同天下之利者,則得天下 동천하지리자,칙득천하 擅天下之利者,則失天下 천천하지리자,칙실천하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에 사는 만민의 천하다. 천하의 이득을 천하 만민과 함께 나누려는 (同)사람은 천하를 얻을것이고 (得)이와 반대로 천하의 이득을 자기 혼자 독점하려는 (擅) 자는 천하를 잃게 된다 (失).우리는 천하가 누구편이라는 것을 안다. 천하는 천하에 사는 만민의 편이다. 조망 (凋亡 Apoptosis)은 이렇게 재편성된다. 정동영의 Nordpolitik (北方政策) 한국에는 김대중의 민주당이 정권을 인수하면서 대북 유화정책이 시작된다. 어쩌면 이는 덕국(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의 반공정책에서 부란트 수상의 포용정책으로의 전환과 비슷하다. 그러나 아데나워의 반공정책이란 이승만의 반공 북진정책과는 너무도 다르다. 이는 동덕(동독)과 꾸준히 대화를 하고 동덕을 경제적으로 항상 지원한 정권이다. 아데나워의 반공정책은 동덕이 대상이 아니고 소련연방공화국이었다. 소련에서 동덕을 빼돌릴 정책이었다. 반면 한국의 반공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게 아니고 북조선을 반대하는 정책이다. 이 두개의 반공은 이렇게 다르다. 북조선의 정체가 자본주의라도 자본주의를 욕한다. 다시 말하면 형제살륙 (Fratricide)이다. 한국은 이념을 초월하고 실리를 추구해야한다. 이러한 실리정책은 정동영의 북방정책 외에는 없다. 한국의 정치구조 (Political structure)는 북조선을 배제하고 러시아로 연결하는 구태의 정책이 아니라 북조선을 포함 내지 북조선과 함께 부산-서울-평양-단동-만주-몽고-다시 소련으로 이어지는 로선과 목포-서울-원산-함흥-부르지보스톡-시베리아 대륙횡단으로 모스크바-백림-파리-론돈까지의 전 아세아 구라파 대륙과 함께 호흡하는 대북방정책 (大北方政策The Greater Nordpolitik)을 말한다. 이것이 수십년간 구상해온 정동영의 북방정책 (Chung’s Nordpolitik)의 핵심이다. 즉 북조선과 손잡고 함께 가는 대륙횡단 사조지로(大陸橫斷 絲綢之路Transcontinental Silk road)를 말한다. 한국의 북방정책은 정동영의 개성공단으로부터 시작하는 포용정책이다.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속국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나 경제협력 또한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특히 경제협력에 있어서는 군수품으로 분류가되면 그것은 끝이다. 사실 모든 것은 군수품이라고 할수있다. 정동영은 미국과의 피가 마르는 마라톤외교에서 네오콘(극우)의 럼스펠드를 설득해서 정-럼스펠드 회담을 성공시킨다.
정동영은 럼스펠드에 「우리가 북한땅 그것도 북한의 전력기지인 개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땅에 북한이 들어와서 공장을 짓는게 아니다.」차마 몰랐던 럼스펠드는 더 열광적이였다. 뒤를 이어 연쇄반응처럼 콜린 포웰의 지지와 콘도리자 라이스의 협조를 얻어냈다. 이는 한국외교사의 한 획을 긋는 업적이다. 덕국의 동방정책은 에곤 바르 (Egon Bahr) 의 設想創作品 (Brainchild) 이라면 개성공단은 정동영의 精神的産兒(Brainchild)인 동시에 정동영이 완성시킨 作品이다. 정동영의 개성공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북조선과 손잡고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大北方政策 (The Greater Nordpolitik) 의 실현만이 정동영이 수십년 꿈꾸고 설계한 독제후정책으로 펼처지는 한국미래의 천년청사진 (Korean Millennium Blueprint) 이 아닐수없다.
필자는 덕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때부터 에곤 바르를 제일 존경했다. 그리고 그후 에곤 바르와 너무도 흡사한 한국의 정동영을 존경하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이 두사람은 정치에서 휴식하는 동안 덕국에서 만난다. 통일에 관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에곤 바르는 정동영의 개성공단 얘기를 듣고 「내가 왜 동덕에 산업단지를 만들생각을 못했을까?」하고 무릅을 첬다는 일화는 유명한 한국외교사의 아름다운 에피소드로 길이 남을것임에 틀림없다.
실크로드 (絲綢之路,德文die Seidenstraße라는 것은 비단장사 왕서방이 비단을 등에 짊어지고 세계 방방곡곡 특히 구라파로 장사하러 다니던 길을 말한다. 이 길은 하나를 의미하지않고 동양에서 돈 벌러 서양에 가는길을 말한다. 이는 또한 육로로 해로로 중국에 비단을 사러오는 상인들의 길이기도하다. 개성공단을 구상할때부터 정동영은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하는 육로의 실크로드를 구상한다. 그래서 그는 大陸途徑(대륙으로 가는길)이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했고 현재 이사장에는 4선 국회의원 이종걸이 맡고있다. 지난 여름 大陸途徑 회원들은 부산에서 출발하는 대륙횡단 Trans-Siberian Express 서울출발 러시아의 바이칼호까지 대장정에 올랐다.「실크로드 정동영 Route」 탐사에 나선것이다. BAM (Baikal–Amur Mainline貝阿鐵路:貝加爾—阿穆爾鐵路) 의 종착역인 바이칼 호수까지 답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는 바이칼호에서 구라파 대륙을 바라보며 「정동영 실크로드」를 구상한다. 비단장사 정서방의 등뒤에는 무엇이 짊어저있을까?세계의 과거와 미래를 아는 사람이라면 비단장사 정서방의 등뒤에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의 기차에 실려있는 Made in Korea 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정동영은 한국을 등에 업고 밤낮 뛰어다닌다. 우리는 同天下之利者(동천하지리자) 가 누구인지 잘 안다. 2014 2014년은 두려운 해다. 2014년은 무서운 해다. 캄캄한 밤이 지나야 새 아침의 여명 (黎明) 이 찾아오듯이 우리가 겪어야하는 해다. 두렵지만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해다. 2014년 새 아침 이남종은 두려움은 내가 갖고 가니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나라고 했다. W.H. Auden은 새해의 편지속에서 우리에게 사랑의 소식을 전한다.
사랑이 다시 도시와 사자굴에 빛을 비쳐 세상의 분노를 잠재우며 젊은이들의 旅路 (갈길)를 다시 밝게해줍니다. 2014년 새해에는 라빈드라낱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의 예언처럼 정동영에게 횃불을 들게 해서 북방정책의 꽃을 피게 하자. Let’s have Him carry the torch 정동영에게 횃불을 들게하자 To illuminate the world out of dark and distress 어두움과 고뇌의 세계에 빛을 비추어 And to eliminate fear and despair 두려움과 절망을 씻어버리자 For one nation, one state and one nation-state. 한 민족,한 국가, 그리고 한 민족국가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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